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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폐교 위기’ 학교 살렸더니 농촌에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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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5회 작성일 21-08-2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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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hani.co.kr/arti/area/yeongnam/984073.html

 

 

자녀 전입학시키는 가정에 집·일자리·문화생활 제공 2019년 14명이던 전교생이 2년 만에 36명으로 증가



“하고 싶은 것이 자꾸자꾸 많아져요.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가고 싶어요.” 


다음달이면 서하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김예진(12)양은 21일 “여기서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라며 동생 예슬(10)이 손을 잡고 새로 이사한 집 마당을 뛰어다녔다. 

서울에서 살던 예진이 가족은 지난해 이른 봄 경남 함양군 서하면으로 이사했다. 

예진이와 예슬이는 시골 작은학교인 서하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지난해 5월 예찬이가 태어나며 막내 자리를 내놓은 셋째 예영(5)이는 다음달 서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들어갈 예정이다. 


처음 이사 와서 마을회관 2층을 개조한 집에서 살던 예진이네는 얼마 전 새집으로 옮겼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양군이 지은 임대주택이다. 

길 하나만 건너면 학교에 갈 수 있는 위치다. 

주중엔 엄마 박은미(41)씨와 사남매가 산다. 

아빠 김선광(44)씨는 아직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만 가족과 지낸다. 


“맹모삼천지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늘 고민했다. 

2019년 서하초등학교가 ‘학생 모집’이 아니라 ‘학생을 모십시다’라는 안내문을 인터넷에 띄운 것을 우연히 보고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지난해 이사를 하며 아이들을 전학시키게 됐다.” 


아빠 선광씨는 “서하초 모든 선생님과 마을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정말 내 아이처럼 관심을 갖고 돌봐주신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하철·쇼핑센터·문화시설·식당·병원 등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우리 아이들에게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제2의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예진이네처럼 전입하는 인구가 늘면서 2019년 14명이던 서하초등학교 전교생은 불과 2년 새 36명으로 불어났다. 

예비 입학생들이 다니는 병설유치원 원생도 4명에서 9명으로 늘어났다. 

서하면 중학생들이 진학하는 인근 안의면 안의중학교도 2009년부터 줄곧 최소 학급인 총 3학급으로 운영하다 다음달부터 5학급(1학년 2학급, 2학년 2학급, 3학년 1학급)으로 덩치를 키운다. 


변화가 그냥 시작된 것은 아니다. 

1931년 개교한 서하초등학교는 1970년대만 해도 전교생이 1000명을 넘었다. 

교실이 부족해서 학교 밖 건물을 빌려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촌 인구가 줄면서 학생 수도 줄었고, 서하면에 있던 초등학교 3곳 가운데 서하초등학교 한 곳만 남았다. 


2019년엔 1학년 3명, 3학년 2명, 4학년 4명, 5학년 1명, 6학년 4명 등 전교생이 14명으로 줄었다. 

2학년생은 단 1명도 없었다. 

병설유치원에는 4살짜리 청강생 1명과 5살 1명, 6살 1명, 7살 1명 등 4명이 전부였다. 

2020년에는 4명이 졸업하고 1명이 입학해 전교생이 11명으로 줄어들 형편이었다. 

체육수업은 전교생이 함께 했고, 학예회 등 단체활동과 수학여행·과학전람회 등 대외활동도 전교생이 모두 참여했다. 

학교 대항 체육대회에는 전교생이 선수로 출전했다. 


경남도교육청은 전교생 30명 이하 초등학교는 폐교하거나 인근 학교와 통합을 권장하고, 20명 이하 학교는 적극적으로 폐교·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면 지역에 초등학교가 1곳뿐이면 폐교·통합 대상에서 제외한다. 

서하초등학교도 학생 수 기준으로는 폐교·통합 대상이었지만, 1개 면 1개 초등학교 유지 원칙에 따라 명맥을 이어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학생이 없으면 폐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경남도교육청 교육혁신추진단은 “경남에서 해마다 평균 2개 학교가 폐교하고 있다. 폐교 뒤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방치하는 학교시설만 94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면에 하나밖에 없는 학교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자, 서하면 주민들은 2019년 ‘서하초등학교 학생모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마을에 귀촌해 살던 장원 농촌유토피아연구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학생모심위원회는 집과 일자리를 내걸었다. 

서하초등학교에 자녀를 전입학시키는 가정에 집을 마련해주고 부모 일자리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십시일반 마련한 1억원으로 전셋집 5채를 확보했다. 

전교생 해외 어학연수와 장학금 지급 등 초등학교에선 보기 드문 파격적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학생모심위원회는 ‘전교생 50명’을 장기 목표로 정했다. 


호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2019년 12월19일 열린 ‘학생모심 전국설명회’에서 75가구 144명이 전입학을 신청했다. 

이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었고, 다자녀 우선 순으로 지난해 7가구 15명이 전입학을 했다. 


장 위원장은 “귀농·귀촌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더욱 늘고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귀농·귀촌해서 정착하지 않으면, 농촌 살리기는 성공할 수 없다. 귀농·귀촌하는 젊은이들에겐 집·일자리·문화생활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학생모심위원회) 차원으로 진행하던 서하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은 벽에 부닥치는 듯했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추가로 2채를 더해 빈집 7채를 수리해서 제공했지만, 도시에서 이사 온 젊은 학부모들의 기대치에는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더 마련하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서하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은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8년부터 협동연구과제로 진행하던 ‘농산어촌 유토피아 구상’과 만나면서 다시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양군은 서하초등학교 인근 밭 2672㎡를 사들여, 2층짜리 6개 동으로 12가구가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지었다. 

동마다 1층과 2층에 1가구씩 살 수 있고, 다자녀 가정을 위한 전용면적 67㎡짜리 10가구와 저소득 가정을 위한 전용면적 49㎡짜리 2가구로 이뤄져 있다. 

다자녀형은 보증금 875만1000원에 한달 임대료 20만~21만원, 저소득형은 보증금 629만3000원에 한달 임대료 9만~10만원으로 책정됐다. 

계약기간은 2년이며 9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어,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했다.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지난 17일 경남 김해에서 이곳으로 이사한 손성모(41)씨는 “예전부터 약초 재배와 항노화제품 가공업을 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결단을 내렸다. 

서하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에 들어갈 두 아이가 있는데, 아직 개학하지 않아 학교생활은 알 수 없지만 각자 자기 방이 생겨서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만민 함양군 미래전략계장은 “임대주택 12가구 가운데 5가구가 입주했고, 나머지 7가구도 개학 전에 입주할 예정이다.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에겐 일자리도 알선해주는데, 이미 2명은 지역업체인 에디슨모터스㈜에 입사했다. 

어린이도서관, 공유부엌 등 다양한 문화시설도 곧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27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곳에서 입주 기념행사가 열린다. 

신귀자 서하초등학교 교장은 “다음달 개학하면 초등학생 36명, 유치원생 9명 등 45명이 된다. 

이 가운데 32명이 지난해부터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가정의 자녀다. 

학생들이 늘면서 조리실무사와 배움터지킴이(봉사직) 각 1명씩 학교 일자리도 늘어났다. 

우리 학교에 자녀를 맡긴 학부모가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더욱 좋은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양군은 인근 안의면에도 2024년까지 100가구 규모의 임대주택을 더 짓기로 했다. 

또 청년들의 농촌체험과 창업지원교육을 위한 실습·거주 공간인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 플랫폼’도 만들고 있다.


 



함양/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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